종교영화로서인가? -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Posted 2006/09/06 16:53   by 김신희, Filed under: 영화

최근에 회자되고 있는 영화중에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영화라면 바로 이 영화일 것이다.
<나사렛 예수>가 나왔을 당시에도 그러하였고,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 나왔을 당시에도 그러하였다.

종교적 색채가 짙은 영화일수록 그 반응은 상대적인 두 갈래였다.
그 하나는 기독교인들로서 예수의 생애를 체험하며 그와 함께 동행하는 부류와, 반대로 기독교 영화라면 무조건 폄하하거나, 내용상의 이기적인 평가를 내리는 부류가 그것이다.

멜 깁슨이 자비를 들여 공들여(?) 만든 이 영화는 그의 말대로 '신이 내게 이 영화를 만들라 하셨다'는 얘기처럼 철저히 기독교적인 정신이 배어 있는 영화였다.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내 자신이 독실한 크리스챤이 되지 못하면서도, 일말의 인간으로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됨은 아마도, 범종교적인 차원에서 기독교가 가지는 상대적 보편성이리라...

현자가 말하기를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한다면 인생의 가치는 무의미하다' 라고 했다. 여기서의 하나님은 분명 기독교적인 존재일 수도 있지만 절대자의 의미일 수도 있다. 대원칙에서의 철학적인 우리의 창조주가 될 것이다.

최근 유대계에서 이 영화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사실 기존의 예수영화와는 달리 사실적으로 폭력이 미화된 것은 자극적이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관객에게 그러하다. 그러나 그 사실적인 내용에 있어서의 "성경적인 잣대"가 그 판가름을 내리는 것이 올바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영화는 '크신 하나님의 역사'일뿐이다.

예수를 누가 죽였는가? 의 유대인들의 촛점은 바로 '크신 하나님의 역사'속에 아무 의미를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폭 넓은 성경속에 그 해답이 있다. 예수를 누가 십자가에 못박게 하였는가? 고난을 누가 주었는가? 그 해답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다.

또한 반대로 예수를 죽인 이는 유대인들이다라는 편협된 시각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

영화속에서 몇 번씩 등장하며 예수를 시험하고 그를 비웃던 사탄은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음에 이르게 함으로써 자신의 모든 계획이 실패했음을 2초정도의 짧은 몽타쥬로 감독은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보낸 예수의 존재는 사탄에겐 인간의 유혹과 타락의 계획에 있어서 승리의 징표이었다. 즉 살아있는 예수가 있음으로 인간에 대한 유혹과 타락이 사탄에겐 의미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수난이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는 그것이 누구에게 의한(원인:Cause) 것인지가 아니라 무엇때문에(목적:Purpose) 그러하였는가를 생각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가진 사실적인 묘사(유대인들과 로마인들이 행한)는 중요하지 않다.

다른 얘기로 고 함석헌 선생께서는 우리 한국의 역사 또한 바로 이 예수의 수난과 같다고 했다. 수많은 외침의 수난 속에서도 멸하지 않고 한국, 한족의 역사를 바로세워 지금껏 지켜가고 있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말이다.

성경이 보여주고 있는 인류에 대한 메세지는 지나간 역사속에서 과거를 지렛대로 삼아 더 높이 뛰어 오를 수 있는 근거를 보여주자는 것이다.

멜깁슨의 이 영화가 종교적인 차원을 떠나 모든 인류가 근본적으로 지향해야 할 근본철학이 어떤 것인지를 다시금 생각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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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eap clarin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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